하나바이블 5과정 2학기 28과, "자족의 성품으로 모든 것에 만족해요!"(빌립보서 4장 13절)

하나바이블 5과정 2학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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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성품

여러분, 지난 주부터 새로운 단원 8단원을 들어갔어요.
8단원에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성품을 여행해요.
그 새로운 성품은 바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에요.
오래 참으시는 성품.
하나님께 이런 성품이 있지 어떻게 알았냐구요?
늘 그렇듯, 하나님 자신이 가르쳐주신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았지요.
이 성경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에요.
출애굽기 34장 6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이렇게 알려주세요.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 예배하기로 약속한 상태였어요.
근데 얼마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를 경배하는 끔찍한 죄를 지었어요.
하나님은 아주 똑똑히 보셨어요. 그들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을요.
어떻게 홀로 위대하신, 감히 어떤 존재도 따라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심판하셔서 그 자리에서 다 죽게 만드실 수 있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나요? 아니요!
하나님은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셨어요. 하지만, 참으셨습니.
모세가 ‘제발 하나님, 이 백성을 용서하시고 살려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다 죽이는 심판을 행하지 않으시고 참으세요.
하나님께는 참을 수 없는 모욕적인 죄였어요. 하나님을 떠나는 죄였어요.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죄였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시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어요.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지난 주에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잠깐 다시 떠올려보세요.
노아의 시대를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사람들이 많아졌지요. 그런데 문제는 동시에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똑똑히 보셨어요.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이 정말 이런 죄, 저런 죄, 하나님을 모욕하고, 거스르고, 대적하는 죄들을 말이에요.
하나님은 바로 온 세상을 물로 다 쓸어버리셔서 모든 사람을 죽게 만드실 수도 있는데, 오래오래 참으셨어요.
아담의 때부터 노아 홍수의 때까지가 약 1656년쯤 되는데, 하나님은 그 기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죄악을 다 보시면서도 참으시고, 참으신 거예요.
노아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고, 노아의 가족들과 동물들이 그 방주에 다 탈 때까지 하나님은 참으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 홍수 이후에 노아와 자연 만물들에게 약속하셨지요.
세상끝날까지 다시는 이렇게 사람들과 동물과 자연을 물로 다 쓸어버리는 심판은 하지 않고, 세상끝날까지 온 세상을 보존하시고, 오래 참으시겠다고요.
지금은 노아 홍수 이후로 4500년~5000년이 지난 2025년의 시대에요.
아직까지 이 세상이 끝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이에요.
2000년 전에, 우리를 위해 구원자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오래 참으시고, 지금까지도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올 사람들을 위해 오래 참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죠.

하나님은 어떻게 오래 참으실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계의 시간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쭉- 앞으로 가고 있어요. 직진하고 있어요.
우리가 어제 토요일에 가족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놀고, 쉬었지만, 그 시간이 흘러 오늘 이렇게 예배하고 있고, 시간은 또 흘러가서 저녁 그다음 월요일 아침 그리고 화요일 이렇게 흘러가요.
그런데 태초부터 마지막 날까지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그냥 모든 일들을 당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어이쿠 갑자기 오늘 이런 일이 생기다니! 너무 화가나는군! 다 엎어리겠어! 못 참아! 빨리 해결해버리겠어!’ 라고 생각하고,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왕이시기에,
태초부터 마지막날까지 흘러가는 시간의 모든 것을 계획하세요.
하나님은 이미 시간이 땅! 하고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떠나게 될지,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는 죄인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하실지, 구원받은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릴지, 이 죄악된 땅을 마지막 날 어떻게 심판하실지에 대해 계획하셨어요.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에 하나님은 참으세요.
우리가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연약할지 다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오래도록 참으세요.
그리고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돌이키시기 위해 오래 참으시고, 참으세요.
하나님은 조급하신 분이 아니에요. 원하시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극대노를 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모든 상황 가운데 못 마땅해 하시면서 불만가득한 모습으로 계시는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따라, 하나님의 주권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우릴 향한 사랑으로 노하기를 참으시고, 심판하시기를 참으시고, 우리가 성장하기까지 참으시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가기까지 참으시고 인내하시는 분이세요.

우리도 오래 참는 성품을 가질 수 있을까?

어렵지만, 가능해요.
우리가 인내가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만, 오래참는 성품이 심겨질 수 있어요.
우리는 원래 본성상 우리 뜻대로 빨리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화를 내고, 불평불만을 하는 연약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요.
모든 게 급하게, 모든 게 내 생각대로, 모든 사람이 내 만족대로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조급하고, 쉽게 화를 품기 쉬운 우리가 어떤 일에도 오래 참고,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길은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거예요.
어떠한 일에든지, 특별히 내 뜻대로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내가 왜 이런 불편함과 고난을 당해야 하느냐고 생각이 되는 때에 더욱 의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 모든 상황 가운데 함께 계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뜻이 있을 것을 믿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 친구들이 쉽게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래 참고, 기다리는 모습을 꼭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그 기다림을 절대 지나치지 않으세요. 반드시 은혜로 갚아주십니다. 반드시 그 기다림 뒤에 엄청난 복과 은혜를 주세요. 내가 생각치도 못했던 역전을, 승리를, 치료를, 회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화를 내거나 내 성격대로 막 함부로 반응해서는 안돼요. 힘들더라도, 어렵더라도 그 뒤에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있을 것을 믿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며 인내해야 해요.

오래참음 가운데 피어난 꽃, “자족”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참고 인내하는 것은 참 힘들어요.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오래 참는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다보면 우리 안에 아름다운 성품 하나가 꽃처럼 피어나요.
그 성품이 바로 “자족”이에요.
‘오래참음’이라는 묵은 토양 가운데 이쁜 꽃처럼 마음 속에 톡! 피어오르는 아주 이쁜 꽃. 바로 “자족”이라는 성품.
“자족”은 어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만족하며 감사하는 것을 말해요. 오히려 더 나아가 기뻐하는 거예요.
만족하며 감사하는 것. 더 나아가 기뻐하는 것이 자족이에요.
‘아니 전도사님! 빨리 빨리 이뤄지지 않아서, 내 맘대로 안돼서 화가 나도 모자른데, 거기서 갑자기 “만족”, “감사”, “기쁨”이 나온다구요?”
네! 맞아요!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며 인내할 때, 우리 안에서 그 상황 속에서 “만족함”을 누리는 은혜가 주어져요.

자족에 대한 오해

사람들은 “자족”을 이야기하면 많이들 오해해요.
‘아니, 자족하라고요? 아니, 이 상황에서 만족하라고요? 뭐 제 기대를 저만치 낮추라는 거예요. 지금도 가난한데, 더 가난한 것보다는 나으니까 만족하라고요? 지금도 힘든데,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으니까 감사하라고요?’
근데 그건 자족을 엄청 잘못 생각하는거예요.
여러분, “자족”은 우리의 기대를 낮추는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자족”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좀 더 낫다는 것을 깨닫는 게 아니에요.
“자족”은 “올바른 기대”를 말해요. “낮춘 기대”, “비교를 통한 좀 나아진 기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기대”. “비교할 수 없는 소망”을 가지라는 거예요.
이 말이 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올바르게 기대할 때 자족할 수 있다고? 비교할 수 없는 소망을 가지면 감사할 수 있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서 한번 “자족”을 다시 이해하고 배워볼까요?

로마에서 갇힌 사도 바울

여러분, 사도 바울을 잘 알고 있지요? 세상 곳곳을 다니며 예수님을 열심히 전한 바울 사도님.
그래서 아마 사도 바울을 떠올릴 때, 멋지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많이 생각하겠지만,
사실 바울 사도께서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면서 매도 많이 맞았고, 공격도 당했고, 감옥에 갇히는 시간이 참 많았답니다.
사도행전 21장에 보면, 바울 사도께서는 예수님을 전한 일 때문에 결국 사람들에게 붙잡힙니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잡아 죽이고 싶어했어요.
그때부터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지요.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이동하고, 가이사랴에서 로마까지 가게됐지요. 사실 중간에 풀려날 수도 있었지만, 바울 사도께서는 로마에까지 가서도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힘든 재판의 과정을 참고 로마를 갔습니다.
그런데 결국 바울 사도께서는 로마에서 갇히게 됩니다. 병사들이 바울 사도가 못 도망가게 붙잡았지요.
바울 사도께서는 늘 마음에 늘 땅끝까지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로마서 15장 28절), 로마에 갇힌 것 때문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었어요.
그렇게 로마에 갇혀 있는데, 목숨을 걸고 사도 바울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에바브로디도.
이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보낸 사역자였어요.
빌립보 교회는 바울 사도가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바울 사도께 생활비와 필요한 사역비를 전달하기 위해 그 먼 빌립보에서 에바브로디도를 보낸 것이었어요.
그 금같은 돈, 정말 교회의 피묻은 돈, 그 후원비를 바울 사도가 받았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혹시 이런 마음이 순간 들지 않았을까요?
‘아니, 이게 뭐야! 이렇게 교회가 날 후원해주기까지 하는데, 나는 여기에 갇혀있기나 하고! 빨리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대체 왜 나는 여기 묶여있는거냐고!’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 때문에 쉽게 화를 내거나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어요.
오히려 후원비를 보낸 준 빌립보 교회에게 바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요.
빌립보서 1장 12절,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1장 13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빌립보서 1장 20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4장 11-13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픔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비록 갇혀 있지만, 자신이 갇혀 있음에도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게 하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가 전해야 해! 내가 빨리 나가야 해!’라는 생각이 아니라, 올바른 기대를 가졌어요. ‘내가 갇혀 있더라도 하나님은 역사하셔.’ ‘내가 이렇게 맞고,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갇혀 있더라도 하나님은 이 일들을 통해서도 예수님이 나타나게 하실거야!’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랑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어요. ‘나는 복음 못 전하는데, 뭐야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이게 뭐야! 빨리 나가고 싶어! 정말 맘에 안 들어!’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어요. 오직 ‘올바른 기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망’을 가졌어요. 바로 내가 당하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어떻게서든 영광스럽게 나타내실 것이라는 바른 기대와 소망을 가지며 참고 인내한 거예요! 내가 살든지, 죽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가난하든지, 부유하든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예수님이 나타날 것을 믿기에! 당장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나는 만족하고, 나는 감사하고, 나는 기뻐할 것이다! 라는 것을 고백한 것이죠.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의 생각-마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친구들도 사도 바울처럼 어떤 상황에서나 만족하며 감사하며 기뻐하는 성품을 갖고 싶죠? 그 일체의 비결 말이에요.
그렇다면, 반드시 믿음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그 믿음으로 오래 견뎌야 해요.
처음에는 내가 생각치도 못한 당황스러운 일, 억울한 일, 힘든 일, 사도 바울처럼 정말 해야 할 일을 앞두고 발이 묶인 일을 당하면 두렵고, 두려움을 넘어 화가 나고, 불평불만이 나올 수 있어요.
그러나 잠잠히 믿음을 가져야 해요.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그 계획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 자신이 영광받으실 길을 여신다!
하나님은 내가 이 일을 견디고, 오래 참는 과정 속에 함께 하시고,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그러다보면 때로는 찾아온 가난도, 관계 속 어려움도, 마주한 위험과 위기 속에서도 올바른 기대를 가지며 소망하며 만족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은혜가 마음 속에 꽃 핀답니다.
저는 우리 친구들이 ‘올바른 기대와 소망’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 무작정 오래 참지 않기를 원해요. 그런식으로 오래 참다보면, 나중에 쌓이다가 화가 폭발해버리거나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다가 다른 사람들까지 질투하고 미워하게 돼요.
그렇게 되면, “자족”이 꽃피울 수 없어요.
“자족”을 꽃피우는 오래 참음 속에는 바로 그 ‘빛나는 믿음’,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기대와 소망’이 역사하는 거예요. 무작정 참지 마세요.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며 그 상황 속에서 견디고 인내하다보면 내 안에 그 상황마저도 만족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답니다.
이제부터 우리 친구들 무조건 “빨리 빨리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조급함, 성급함을 버리세요.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괜찮을거야.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기대할거야.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할거야. 하나님을 기다릴거야. 이 오래 참는 시간도 끝이 날거야. 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고,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지나갈거야.”라는 마음을 갖고 자족의 성품을 키워가시길 바래요.

마무리 질문

내 마음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들이 일어났을 때, 나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화를 내야 할까요?
그런 상황 속에서 화를 참고, 불만을 참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 친구들의 오래 참음, 인내, 기다림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을 믿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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